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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패자 연표(1348~1799)

 

1348년, 절강(浙江)에서 방국진(方國珍)이 반란을 일으킴.

 

1350년, 왜구가 고려의 고성(固城), 죽림(竹林), 거제(巨濟) 등지를 노략질함.

 

1350년, 왜선(倭船) 100여 척이 고려의 순천부(順天府)에 침입하고,
남원(南原), 구례(求禮) 등지의 조선(漕船)을 노략질함

 

1351년, 공민왕[恭愍王]이 고려의 왕이 되다.

 

1351년, 서수휘(徐壽輝)가 호북성에서 황제를 칭하고 천완국(天完國)을 세움.

 

1351년, 원나라 순제가 황하 치수공사를 위해
대규모의 양민을 부역시키자 이를 계기로, 유복통과 한상동의
지휘아래 백련교도들은 영주에서 대대적인 봉기를 일으켰다.

 

1351년, 송나라가 '불과 같은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는 데에서 붉은 두건을 머리에 두름.
홍건적의 난(紅巾賊 ─亂)

 

1352년, 곽자흥(郭子?)이 무리를 이끌고 봉기해서
호주(濠州 : 지금의 안후이성 鳳?)를 점령

 

1352년, 왜구가 교동(喬棟)에 침입함.

 

1354년, 원나라의 요청으로 한족(漢族) 부흥 세력인
장사성(張士誠) 토벌을 위해 유탁(柳濯) 등
장수 40명과 군사 2000여명을 파병함.

 

1355년, 유복통은 한산동의 아들 한림아를
황제로 세워 소명왕(小明王)이라 칭하고,
박주(?州)에 도읍을 정하여 국호를 송(宋)이라 하엿다.

 

1356년, 인당이 지휘하는 고려군이
압록강을 건너 파사부(婆娑府) 등 세 참(站)을 격파함.

 

1356년, 장사성이 양자강 하류 삼각주 지대의 중심지인
소주(蘇州)를 함락시키고, 고우에서 소주로
수도를 옮기고 오국(吳國)이라 칭했다.

 

1356년, 고려가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함락하여
함주(咸州) 이북의 영토를 99년만에 수복함.

 

1356년, 명옥진(明玉珍)이 성도를 공격하고 사천의 여러 군을 평정하였다.

 

1359년, 홍두적(紅頭賊) 4만명이 고려를 침공하여
의주(義州), 서경(西京) 등을 점령함.
제 1차 홍건적 침입(第 1次 紅巾賊 侵入)

 

1361년, 반성(潘誠), 사유(沙劉) 등이 지휘하는
홍두적(紅頭賊) 10만여 명이 고려를 침공.
제 2차 홍건적 침입(第 2次 紅巾賊 侵入)

 

1362년, 정세운(鄭世雲)이 지휘하는 20만 고려군이 개경(開京)을 탈환함.
10만 명의 홍두적이 사살되고 잔존 군사들은 요동(遼東)으로 완전히 퇴각함.

 

1363년, 진우량의 수군이 파양호에서 주원장의 수군에게 대패함.
파양호대전(?陽湖大戰)

 

1364년, 여진족인 삼선(三善)과 삼개(三介) 등이
여진족을 이끌고 함주(咸州)를 점령하나 이성계(李成桂)의 반격으로 후퇴.

 

1364년, 주원장(朱元璋)이 절강, 강서와 호북을 격파하여 오왕으로 자립하였다.

 

1366년, 주원장(朱元璋)이 원의 수도 연경을 점령함

 

1367년, 장사성 서달(徐達) 등이 이끄는 명(明)나라 군의 총공격에 대패.

 

1368년, 남경에서 주원장이 명(明)을 선포하고 20만대군을 이끌고,
북벌을 개시하자 원순제는 대도를 버리고 상도로 도망쳐 북원을 건국함,
이에 만리장성 이남의 중국은 명(明)에 의해 통일됨.
원(元) 멸망(滅亡), 명(明) 건국(建國), 북원(北元) 건국(建國).

 

1369년, 왜구가 명의 연안을 습격,
명의 홍무제가 가네가와 친왕에게 왜구의 금압을 요청.

 

1370년, 고려의 지용수(池龍壽), 이성계(李成桂) 등이
만주의 동녕부(東寧府)를 공략함.

 

1371년, 홍무제(洪武帝)의 군대가 하(명옥진)을 멸망시킴.

 

1371년, 원의 유익(요양 수비대장) 명나라에 항복하고 북평부로 개칭

 

1371년, 혜종 토곤테무르가 사망하자,
아유르시리다르가 고비사막 이북의 초원으로 돌아가
스스로 ‘빌릭투 칸’이라 칭하고 카라코룸에서 북원의 황제로 즉위함.

 

1372년, 나하추(納哈出) 고려의
이성(泥城), 강계(江界) 등지를 침범함.

 

1372년, 주원장(朱元璋)이 서달(徐達)을 보내
북원까지 정벌하려 했으나 코케 테무르의 반격으로 크게 패배함.

 

1374년, 최영(崔塋)이 제주(濟州)의
목호(牧胡)들이 일으킨 난을 평정함.

 

1375년, 북원의 명장 코케 테무르 사망.

 

1376년, 최영(崔塋)이 홍산(鴻山)에서 왜구를 대파함.
홍산대첩[鴻山大捷]

 

1380년, 나세(羅世), 최무선(崔茂宣) 등이 이끈 고려 수군이
진포(鎭浦)에서 화약 무기를 사용하여, 왜구의 전선 500척을 격파함.
진포대첩[鎭浦大捷]

 

1380년, 이성계(李成桂)가 이끈 고려군이
황산(荒山)에서 왜구를 대파함.
황산대첩[荒山大捷]

 

1382년, 명군이 곤명에서 원의 양왕을 섬멸하고
운남도지휘사사와 귀주도지휘사사를 설치.

 

1383년, 여진족인 호발도(胡拔都)가
단주(端州)를 침입하자 이성계(李成桂)가 격퇴함.

 

1388년, 요동정벌(遼東征伐)에 나선 이성계(李成桂)가
압록강 하류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정변을 일으키고 공양왕(恭讓王)을 왕으로 세움.
위화도 회군(威化島 回軍)

 

1389년, 박위가 병선 1백 척을 이끌고
쓰시마 섬을 공격하여 왜선 300척을 불사르고,
노사태(盧舍殆)를 진멸하여 고려의 민간인 포로 남녀 1백여 명을 찾아왔다.

 

1392년, 홍무제(洪武帝)는 중로군, 동로군, 서로군의 15만 대병을 동원하여
그의 유능한 장수들인 서달(徐達), 이문충(李文忠), 풍승(馮勝)을
3로 원정군의 사령관으로 각각 임명한 후 3로로 진격하여 사방에서
카라코룸의 북원세력을 향해 포위해 북상하여 북원제국을 멸망시키고자함.

 

1392년, 이에 북원군은 대칸인 '빌릭투 칸'과
그의 아들 '토구스-테무르(Togus-Temur)'의 영도하에 명군과 격전을 치르며
명군은 서로군을 제외하고는 서달(徐達)의 중로군이
톨라강가에서 거의 전멸에 가까운 몰살을 당하고
동로군이 연이어 패배하면서 2로의 대군이 모두 무너짐.

 

1392년, 이성계가 왕위에 오름으로써 450년 동안 지속된
고려 왕조가 멸망하고 새 왕조 조선이 건국됨.
고려(高麗) 멸망(滅亡), 조선(朝鮮) 건국(建國)

 

1392년,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남북조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남북조 통일.

 

1396년, 문하우정승(門下右政丞) 김사형(金士衡)이
오도 병마처치사(五道兵馬處置使)가 되어 쓰시마 섬을 정벌하였다.

 

1398년, 명(明) 주원장(朱元璋) 사망. 건문제(建文帝) 즉위.

 

1398년, 제 1차 왕자의 난, 정도전, 남은 등 죽임을 당함.

 

1399년, 명의 영락제가 건문제로부터 제위를 탈취함.
정난의 변(靖難之變)

 

1400년, 제 2차 왕자의 난.

 

1403년, 영락제(永樂帝)가 흑룡강 하류에 누르간도사[奴兒干道司]를,
백두산 북쪽에 건주위(建州衛)를 두어 여진부족을 통할함.

 

1405년, 명나라의 환관 정화, 1차 항해

 

1407년, 명(明) 베트남(越南) 정복.

 

1407년, 명나라의 환관 정화, 2차 항해

 

1408년, 태조 이성계가 창덕궁 광연루 별전에서 74세의 나이로 사망함.

 

1408년, 일본의 쇼군 요시미쓰 사망.

 

1409년, 명나라의 환관 정화, 3차 항해

 

1410년, 서북부에 오이라트가 일어나 명나라에 압력을 가하자,
영락제가 고비사막 북쪽으로 친정함.
영락제의 1차 몽골 원정

 

1413년, 명나라의 환관 정화, 4차 항해

 

1414년, 영락제의 2차 몽골 원정

 

1417년, 명나라의 환관 정화, 5차 항해

 

1418년, 태종이 세종에게 선위하여 세종이 즉위.

 

1419년, 이종무의 함대가 거제도에서 출발하여 쓰시마 섬에 도착,
이종무는 도주 사다모리에게 항복을 권하였으나 대답이 없자,
왜구를 수색하여 1백여 명을 참수하고 2천여 호의 가옥을 불태웠다.

 

1420년, 산둥성 빈주에서 당새아가 반란을 일으킴.
당새아의 난(唐賽兒 亂)

 

1421년, 명나라의 환관 정화, 6차 항해

 

1422년, 영락제의 3차 몽골 원정

 

1423년, 영락제의 4차 몽골 원정

 

1424년, 영락제가 5차 몽골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망.

 

1428년, 레 러이, 응우옌 짜이가 10여년간의 싸움 끝에
명나라 군사를 물리치자 명이 쩐 왕조의 후예를 왕위에 오르게 하는 대신
철수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자 쩐 까오(Tran Cao)를 왕위에 세우나,
쩐 까오(Tran Cao)가 자살하자 레 러이가 스스로 왕위에 오름.

 

1428년, 쇼초(正長)의 도잇키(土一揆 : 농민 봉기) 발생.

 

1431년, 명나라의 환관 정화, 7차 항해

 

1432년, 건주야인의 이만주 이연군을 약탈함.

 

1433년, 명나라의 환관 정화 사망.

 

1433년, 배트남의 왕 태조 레 러이 사망.

 

1433년, 최윤덕이 군사 약 1만 5천을 이끌고
압록강 유역의 여진족을 소탕하고 4군을 설치햇고,
같은 해 김종서도 함길도 지방의 여진족을 물리쳐
두만강 유역에 6진을 설치했다.
4군 6진 (四郡六鎭)

 

1435년, 명(明) 선덕제(宣德帝) 사망. 정통제(宣德帝) 즉위

 

1437년, 운남성 서려에서 사임발이 반란을 일으키다.

 

1439년, 토곤이 죽자 그의 아들 에센이 오이라트의 지도자가 됨.

 

1442년, 엽종류가 절강성 경원에서 반란을 일으키다.

 

1448년, 등무칠이 북건성 사현에서 반란을 일으키다.
등무칠의 난 (鄧茂七─亂)

 

1449년, 명나라 정통제는 친히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였지만
다퉁에 이르렀을 때 오이라트의 세력이 예상보다 강하고
형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되돌아가던 중, 토목에서
오이라트군과 싸우다가 대패하여 황제가 포로가 되고 말았다.
토목의 변 (土木─變)

 

1449년, 명의 명장 우겸이 1만명의 군사로 오이라트군을 쫓아내다.

 

1450년, 조선의 왕 세종 사망.

 

1453년, 후대구가 광시성 계평에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다.

 

1453년, 조선의 함경도에서 이징옥이 반란을 일으키다.

 

1454년, 에센 칸이 사망하자 오이라트의 세력이 약화됨.

 

1455년, 수양대군(세조)이 친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제거한 뒤 정권을 장악하고 왕위에 오름.

 

1457년, 훗카이도 하코다테에서 반란이 일어남.
코샤마인 봉기(コシャマインの?い)

 

1460년, 베트남에서 레 타인 똥(Le Thanh Tong·聖宗)이 즉위함.

 

1464년, 제 1차 형양의 난

 

1467년, 오닌·분메이의 난.
전국시대 (せんごくじだい) 시작.

 

1467년, 세조가 남이(南怡)·강순(康純) 등에게 명하여
야인을 토벌하면서 이만주 부자(父子)를 피살(被殺)함.
건주여진정벌 (建州女眞征伐)

 

1468년, 조선의 왕 세조 사망.

 

1470년, 몽골족의 영웅 칭키스칸의 가묘가 있는
성지나이만 차강게르 앞에서 바트 멍흐(다얀 칸)가 칸에 오름.

 

1470년, 제 2차 형양의 난

 

1473년, 아시카가 요시히사가 아시카가 요시마사에게
쇼군 직을 물려받아 제 9대 쇼군에 취임함.

 

1488년, 다얀 칸이 대군을 이끌고 명나라 북부 침략.

 

1489년, 일본의 쇼군 요시히사 사망.

 

1491년, 다얀칸이 오이라트를 공격하여 내몽골을 합병함.

 

1494년, 왜구가 거제현(巨濟縣)에 침입함.

 

1497년, 남월(南越) 레 타인 똥(聖宗) 사망.

 

1498년, 김일손(金馹孫) 등 신진사류(新進士類)가
유자광(柳子光)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勳舊派)에 의해 화를 입음.
무오사화(戊午士禍)

 

1500년, 초무사 전임이 포작선26척을 거느리고,
해랑도를 수색하여 중국인78명, 조선인34명을 잡아옴.

 

1501년, 타타르부의 다얀 칸이 명군을 격파하고 오르도스 공격.

 

1504년, 훈구사림파 중심의 부중 세력이 궁중 세력에게 정치적인 탄압을 받음.
갑자사화(甲子士禍)

 

1505년, 다얀칸, 명나라의 요동,감숙지방을 점령

 

1510년, 제포, 부산포, 염포의 삼포에 거주하고 있던
왜인들이 대마도주 종성친의 지원을 받아 왜란을 일으킴.
삼포왜란(三浦倭亂)

 

1519년,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김식(金湜) 등 신진사류가
남곤(南袞)·심정(沈貞)·홍경주(洪景舟) 등의 훈구 재상에 의해 화를 입음.
기묘사화(己卯士禍)

 

1527년, 막당중이 꿍호앙을 강제 퇴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뒤 명나라에 영토를 할양하고 안남도통사로 임명되자,
이 후 레왕조의 부흥운동으로 인해 극도의 혼란과 분열이 이어지고,
레의 부흥운동에 참여한 찐(鄭)씨와 응우옌(阮)씨에 의해 남북으로 분열됨.

 

1533년, 명나라 대동(다퉁)에서 반란이 일어남.

 

1543년, 다얀 칸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알탄 칸이 초원을 지배함.

 

1544년, 왜선 20여 척이 사량진에 침입하여 사람과 말[馬]을 약탈함.
사량진왜변(蛇梁鎭倭變)

 

1545년, 윤원형(尹元衡) 일파 소윤(小尹)이
윤임(尹任) 일파 대윤(大尹)을 숙청하면서 사림이 크게 화를 입음.
을사사화(乙巳士禍)

 

1550년, 타타르 부의 알탄 칸이 북경(베이징)을 포위하고 집요하게 공격함.
경술의 변(庚戌之變)

 

1552년, 알탄 칸, 오이라트를 공격해 카라코룸,칭하이를 점령함.

 

1555년, 왜구가 전라남도 강진·진도 일대를 약탈함.
을묘왜변(乙卯倭變)

 

1555년, 왜구, 중국 내륙에 침입함.

 

1555년, 명(明)의 명장 척계광(戚繼光)이 왜군을 격파함.

 

1557년, 포르투갈이 중국으로부터 마카오를 조차함.

 

1559년, 임꺽정이 유랑민과 도적들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킴.
임꺽정의 난(林巨正 亂)

 

1560년, 오케하자마[桶狹間]에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단 2천명의 병사로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의 수만의 대군을 물리침.
오케하자마 전투(桶?間の?い)

 

1562년, 척계광(戚繼光)이 푸젠성[福建省]의 왜구(倭寇) 근거지를 소탕함.

 

1571년, 스페인이 필리핀 제도의 마닐라를 점령, 식민지의 수도로 선포함.

 

1573년, 명나라에서 장거정이 재상에 취임되어 토지측량과 일조편법을 실시함.
장거정의 개혁(張居正 改革)

 

1573년, 오다 노부나가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교토에서 추방함.
무로마치 막부 멸망(室町時代 滅亡)

 

1575년,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이 다케다 군을 격파하고 에치젠을 평정함.
나가시노 전투(長篠戰鬪)

 

1578년, 우에스기 겐신이 급사하고 가문내에서 내분이 일어나자
이 틈을 노려 오다 군은 우에스기 령의 노토, 가가를 공략함.

 

1582년, 명나라의 개혁가 장거정 사망.

 

1582년, 타타르의 대칸 알탄 칸 사망.

 

1582년, 오다 노부나가 10만 대군을 이끌고 다케다 가문을 멸망시킴.

 

1582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가
반역하여 혼노지[本能寺]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자결하게 만듬.
혼노지의 변(本能寺の?)

 

1582년, 모리 가문을 정벌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군의 사망소식을 듣게되자 급히 모리 가문과 화친을 맺고
말머리를 돌려 교토로 회군한 뒤 아케치 군을 공격하여 승리함.
야마자키 전투(山崎の?い)

 

1585년, 히데요시가 히데나가를 총대장에 임명하여 시코쿠를 정복함.
이 전투에서 모리 데루모토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등의 모리 군도 가세함.
주고쿠,시코쿠 정복(中?地方,四? 征服)

 

1587년, 히데요시 스스로 20만 대군을 이끌고 규슈를 공략함.
규슈 정벌(九州の役)

 

1587년, 여진족이 녹둔도를 공격하자 이순신과 이경록이
반격을 가하여 적 3인의 머리를 베고 포로 50명을 되찾아 왔다.

 

1588년, 명나라의 명장 척계광 사망.

 

1589년, 누르하치가 건주 여진 5부족을 통일함.

 

1590년, 히데요시가 고호조 가문을 제압하기 위해
간토(?東)로 군사를 돌려 오다와라 성(小田原城)을 점령함.

 

1591년, 도호쿠 지방에서 후계 다툼으로 난을 일으키자
히데요시가 6만 대군을 편성하여 도호쿠 지방을 점령하고 전국을 통일함.
일본 전국 통일(日本 全國 統一)

 

1592년, 응우옌 낌이 사망한 후 그의 사위 찐 끼엠이
실권을 장악하고 막씨 타도 운동을 계속하여,
탕롱을 탈환하고 황실의 부흥에 성공함.
그 후 막씨 세력은 까오 방으로 밀려남.
베트남 통일(南越 統一)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약 20만 명의 군대로 조선을 침공함.
정발이 지키는 부산진성과 송상현이 지키는 동래성이 함락되고,
순변사 이일이 상주에서 일본군에게 패하여, 10일만에 경상도가 넘어갔다.
임진왜란 발발(壬辰倭亂 勃發)

 

1592년, 신립이 이끄는 8000명의 조선군이 충주 탄금대에서 전멸함.
탄금대 전투(彈琴臺 戰鬪)

 

1592년, 옥포 앞 바다에서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를 무찌름.
옥포 해전(玉浦 海戰)

 

1592년, 조선 수군이 경상남도 사천 앞바다에서
왜군 함선 13척을 격침시키고, 왜군 2,600여 명을 사살함.
사천 해전(泗川 海戰)

 

1592년, 왜선이 당항포에 머무르고 있음을 탐지한,
이순신(李舜臣)이 이억기(李億祺), 원균(元均)과 합세하여 51척으로 공격,
왜선 26척을 격파하고 적수(賊首) 50여급을 베는 전과를 거둠.
제 1차 당항포 해전(第 1次 唐項浦 海戰)

 

1592년, 경기도 용인에서 이광과 윤선각 등이 이끄는 5만 명의 조선군이
와키사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1600명의 일본군에게 기습당해 크게 패배함.
용인 전투(龍仁 戰鬪)

 

1592년, 대동강의 수심이 얕은 것을 본 일본군이 강을 건너
평양성을 공격해 왔고 결국 윤두수와 김명원은 군사들을 내보낸 뒤
무기를 모두 풍월루의 연못에 버리고 빠져나왔다.
그리고 평양성은 전쟁 개전 60일 만에 일본군에게 함락당햇다.
평양 전투(平壤 戰鬪)

 

1592년, 권율(權慄)·황진(黃進) 등이 이끄는 조선군이 이치(梨峙 : 배재)에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이끄는 일본군과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둠.
이치 전투(梨峙戰鬪)

 

1592년,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뒤,
학익진(鶴翼陣)을 펼쳐 사방에서 포위하여 일본군을 괴멸시킴.
한산도 대첩(閑山島 大捷)

 

1592년,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조헌(趙憲)이 거느린 의병이
왜군과 금산에서 치열하게 혈전을 벌이나 패배함.
금산 전투(錦山 戰鬪)

 

1592년, 모리 요시나리가 병력 3000명을 이끌고 영원산성을 공격하자,
원주 목사 김제갑이 활을 쏘며 분전하나 왜군의 총에 맞아 전사하고 성이 함락됨.
영원산성 전투(領願山城 戰鬪)

 

1592년, 조선군이 부산포에 정박한 일본군 함대를 기습하여 대파함.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100여 척의 함선을 잃고 조선 수군이 제해권을 장악함.
부산포 해전(釜山浦 海戰)

 

1592년, 3만 명의 왜군이 진주성을 공격해 오자,
진주 목사 김시민과 군민들이 합세하여 일본군을 물리침.
제 1차 진주성 전투(第1次 晋州城 戰鬪)

 

1592년, 권율이 독성산성에 들어가자 일본군은 후방의 안전을 위해
2만명의 군대를 파견하나 급습의 피해와 장기전의 부담감으로 후퇴함.
독성산성 전투(禿城山城 戰鬪)

 

1592년, 함경도에서 의병장 정문부가 경성과 길주 등지에서
일본의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와 반란을 일으킨 국경인과
여진족들을 모두 무찌르고 함경도를 탈환함.
북관 대첩(北關 大捷)

 

1593년,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공격하자,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은 큰 피해를 입고,
한양으로 후퇴하고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 탈환에 성공함.
평양 전투(平壤 戰鬪)

 

1593년, 벽제관(碧蹄館)에서 명(明)군이 일본(日本)군에게 대패함.
벽제관 전투(碧蹄館 戰鬪)

 

1593년, 왜군이 3만여 병력을 동원하여 행주산성을 맹공격했으나,
결국 패배하여 후퇴하자 조선군은 퇴각하는 왜군을 추격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행주 대첩(幸州 大捷)

 

1593년, 누르하치가 이끄는 만주군이 해서여진을,
중심으로 한 아홉 부족 연합군과 격돌하여 완승을 거둠.
그레 전투(?? 戰鬪)

 

1593년, 10만여명의 일본군이 진주성을 공격하자,
진주성에서 3천여 명의 조선군과 6만여 명의 민간인이 항전하나,
결국 진주성이 함락되고, 진주목사 서예원을 비롯하여,
김천일, 최경회 등 대부분의 지도부가 남강에 투신하거나 전사함.
제 2차 진주성 전투(第2次 晋州城 戰鬪)

 

1594년, 왜선 31척이 당항포로 이동하자 이순신이
삼도수군을 견내량(見乃梁)과 증도(甑島) 근해에 배치하여 왜선의 퇴로를 막고
조방장(助防將) 어영담(魚泳譚)에게 군사 31인을 주어
왜선을 치게 하여 당항포 근해의 왜선 10척을 격파하고,
이어서 전군이 일제히 공격하여 포구(浦口)에 정박한 나머지 21척을 모두 불태움.
제 2차 당항포 해전(第 2次 唐項浦 海戰)

 

1594년, 양응룡(楊應龍)이 쓰촨(四川) 지방에서 반란(反亂)을 일으킴.
양응룡의 난(楊應龍─亂)

 

1597년, 100척이 넘는 판옥선, 거북선과 1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수군을 총동원한 원균이 이끄는 수군이 거제도 서쪽의 작은 섬
칠천도 남쪽에 정박하다가 일본수군에 야습을 당하여 괴멸함.
칠천량 해전(漆川梁 海戰)

 

1597년, 일본군이 5만 8000여명의 병력으로
전북 남원성을 공격해 조명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함.
남원 전투(南原 戰鬪)

 

1597년, 이순신(李舜臣)이 명량(울돌목)에서
조선 수군 13척으로 일본 수군 333여척을 대파함.
명량 대첩(鳴梁 大捷)

 

1598년, 사천 선진리성에서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인솔하는
시마즈군 7천 명이 약 4만 명의 조·명 연합군과 싸워 승리함.
사천 전투(泗川 戰鬪)

 

1598년,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병사(病死) 소식을 듣고 일본군이 철군하자
이순신이 진형을 재정비해 노량 앞 바다에서 왜군을 공격하여
전선 200여 척 침몰, 100여 척 나포, 150여 척을 파손시켯으나
이순신은 관음포에서 마지막으로 도주하는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함.
노량 대첩(露梁 大捷)

 

1599년, 마천승과 진양옥이 3천5백의 병사를 이끌고 도적을 토벌함.

 

1599년, 누르하치가 자신을 적대시하던 해서여진을 멸망시킴.

 

1599년, 마쓰마에 번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신종함.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파와 이시다 미쓰나리파가
세키가하라에서 결전을 벌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이 승리함.
?ヶ原の?い(세키가하라 전투)

 

1603년, 평안도 화이도에서 해랑적(海浪賊)들이 출몰하여 연안을 약탈함.

 

1604년, 북원(北元) 보얀 체첸칸(Buyan Sechen Khan) 사망, 링단칸(林丹汗) 즉위.

 

1608년, 조선(朝鮮) 선조(宣祖) 사망, 광해군(光海君) 즉위.

 

1608년, 전라도 지역에 해랑적(海浪賊)이 출몰하여 재물을 약탈함.

 

1609년, 사쓰마 번이 류쿠국을 침공하여 아마미를 빼앗고, 일본의 조공국으로 만듬.

 

1612년, 해랑적(海浪賊)이 강화도(江華島)에서 출몰하여 재물을 노략질함.

 

1615년, 에도 막부(江戶幕府)가 도요토미 가문을 공격하여 멸망시킴.
오사카 전투(大坂 戰鬪)

 

1616년, 일본의 쇼군 이에야스 사망.

 

1618년, 누르하치가 "일곱가지 큰 원한" 이라는
7대한의 격문을 발표하고 명(明)에 선전포고 하여 푸순,칭허를 공략함.

 

1619년, 명나라가 예허부와 조선에 원군을 요청하여,
47만 만주토벌군을 결성하나 사르후에서 5만의 만주군과 격돌하여 대패함.
사르후 전투(薩爾滸 戰鬪)

 

1623년, 재분열된 몽골에서 좌익 칼카부와 계속되는 항쟁을 하던
오이라트는 몽골 칼카부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하고 다시 독립을 쟁취함.

 

1624년, 조선(朝鮮)에서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켜 한양을 함락시킴.
이괄의 난(李适─亂)

 

1624년, 임경업이 길마재에서 이괄의 군대를 물리치고 한양을 회복함.
길마재 전투(??? 戰鬪)

 

1624년, 펑후 제도를 점거하던 네덜란드가 명나라와 합의하여,
펑후 제도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타이완 섬의 서남부에 상업지구를 건립하는 것에 합의함.

 

1626년, 에스파냐인들이 타이완 섬에 들어와,
타이완 섬 북부의 지룽과 서랴오섬 일대를 차지하고 산살바도르 성을 세움.

 

1626년, 누르하치가 10만대군을 이끌고 영원성으로 진격하자,
원숭환이 이에 맞서 청야전술(淸野 戰術)로 대항하여,
누르하치는 홍이포(紅夷砲)로 인해 크게 부상입고 후금(後金)군은 후퇴함.
영원대첩(寧遠大捷)

 

1627년, 영원성(寧遠城)과 금주성(錦州城)에서 원숭환(袁崇煥)이
후금(後金)의 태종(太宗) 홍타이지(皇太極)의 공격을 물리침.
영금대첩(寧錦大捷)

 

1627년, 홍타이지가 아민에게 군사 3만 명을 주어 조선을 침공,
인조와 조정의 신하들이 강화도에서 항전하자 후금이 강화(講和) 의사를 표시하여,
조선과 후금이 형제관계를 맺고 후금군은 철퇴(撤退)함.
정묘호란(丁卯胡亂)

 

1627년, 산시 지방에 대기근이 일어나자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킴.

 

1629년, 홍타이지가 수십만 군사를 거느리고,
용정관과 대안구로 길을 돌아와서 명나라 도성 북경을 공격하자,
원숭환이 급히 군사를 이끌고 북경에 도착하여 후금군을 물리침.

 

1630년, 명나라의 명장 원숭환 사망.

 

1631년, 원숭환의 부하 조대수가 주장(主將)의
투옥과 죽음을 통탄하다가 결국 후금으로 투항함.

 

1635년, 명나라에서 군인들의 식량배급이 원활하지 않자,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이자성을 중심으로 연합하여 명(明)에 대항함.
제 1차 이자성의 난(第 1次 李自成─亂)

 

1635년, 명나라가 사가법(史可法)을 강북(江北)으로 파견하여 반란군을 제압함.

 

1636년, 북원의 링단칸이 사망하자 홍타이지가 몽골에 원정하여,
내몽골을 복속하고 원(元) 옥새를 차지한 뒤 쿠릴타이를 소집하여 몽골제국을 계승함.
청(淸) 건국(建國), 북원(北元) 멸망(滅亡)

 

1636년, 홍타이지가 직접 12만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하자,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가려하나 길이 막혀 결국 남한산성으로 들어감.
병자호란 발발(丙子胡亂 勃發)

 

1637년, 남한산성에 고립되어 있던 인조를 구원하기 위해,
경상 좌병사 허완(許完)과 우병사 민영(閔?)이 근왕군을 이끌고 구원하나,
쌍령에서 청군이 300명의 기병으로 조선군을 급습하여 4만명이 괴멸당함.
쌍령전투(雙嶺戰鬪)

 

1637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피난했던 강화도가 청군에 의해 함락되자,
남한산성에 있던 조선군도 항전의 의지가 꺽이게 되고,
결국 인조가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함으로써 조선이 정식으로 청에 항복함.
삼전도의 굴욕(丁丑下城)

 

1637년, 일본 규슈 북부의 시마바라에서 기독교를 믿는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킴.
시마바라의 난(島原の亂)

 

1639년, 명나라에서 큰 흉년이 발생하자,
호북에서 이자성을 중심으로 반란군이 봉기함.
제 2차 이자성의 난(第 2次 李自成─亂)

 

1640년, 충청도 비인현에서 해랑적이 출몰하여 연안을 약탈함.

 

1641년, 광해군(光海君)이 제주도에서 67세의 나이로 사망함.

 

1641년, 이자성이 낙양을 점령하고 명나라의 신왕을 살해함.

1642년, 일본에서 흉년으로 먹을 양식이 모자라 백성들이 굶주리는 대기근이 발생함.
간에이 대기근(?永 大飢饉)

 

1644년, 장헌충이 농민 반란군을 이끌어 양양(襄陽), 무창(武昌) 등지에서
관군을 대파하고 사천(四川) 지방에 대서국(大西國)을 세운뒤 스스로 황제를 칭함.
대서(大西) 건국(建國)

 

1644년, 이자성이 서안을 수도로 국호를 대순으로 정하고 베이징을 점령하자,
숭정제의 아들 홍광제가 사가법 등의 추대로 난징에서 남명 정권을 설립함.
명(明) 멸망(滅亡), 대순(大順) 건국(建國), 남명(南明) 건국(建國).

 

1644년, 산해관에서 오삼계가 청군(淸軍)에게 투항한 뒤,
도르곤이 대순(大順)을 공격하여 베이징[北京]을 점령하는데 성공함.

 

1645년, 이자성(李自成)은 청군(淸軍)의 공격으로 시안[西安]마저 포기하고,
퉁관[潼關], 샹양[襄陽] 등지로 퇴각을 거듭하다가 결국 구궁산(九宮山)에서 사망함.
대순(大順) 멸망(滅亡)

 

1645년, 청군(淸軍)의 명장 도도가 양주를 공격하자,
사가법(史可法)이 양주를 수호(守護)하나 결국 성이 함락되고 사망함.

 

1646년, 장헌충(張獻忠)이 숙친왕(肅親王) 하오거[豪格]가 이끄는,
청군(淸軍)과 쓰촨[四川] 지역에서 격렬히 맞서 싸웠지만,
결국 패배하여 봉황산(鳳凰山)에서 전사함.
대서(大西) 멸망(滅亡)

 

1646년, 조선의 명장 임경업 사망.

 

1646년, 청군(淸軍)이 복건성을 공격하자 정지룡(鄭芝龍)은 청군에 항복하고,
융무제(隆武帝)는 정주(汀州)에서 포로로 잡혀 푸저우(福州)에서 죽임을 당함.

 

1647년, 청군(淸軍)이 후난성(湖南省)을 점령함.

 

1649년, 조선(朝鮮) 인조(仁祖) 사망, 효종(孝宗) 즉위.

 

1650년, 청군(淸軍)이 경동과 구이린을 함락시켜 남명(南明)을 압박함.

 

1650년, 정성공이 샤먼 섬과 진먼 섬을 근거지로 삼아,
취안저우·광둥·저장 등 세 성 지역의 연해를 계속 공격함.

 

1652년, 조선에서 효종이 대대적인 군제개편을 실시하여 국방을 튼튼히 함.

 

1652년, 러시아인들이 흑룡강(黑龍江) 우안과 송화강(松花江) 방면으로 진출함.

 

1654년, 러시아가 남하하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낀 청은 조선에 파병을 요구하고,
이에 조선이 파병에 응해 조청연합군 1000여명이 쑹화강 하구에서 러시아군을 물리침.
제 1차 나선정벌(第 1次 羅禪征伐)

 

1658년, 러시아가 계속 남하하기 시작하자 청은 다시 조선에 파병을 요청하엿고,
이에 조선이 200여명의 군사를 파병하여 도합 조청연합군 2000여명이,
헤이룽강에서 스테파노프가 이끄는 러시아군을 괴멸(壞滅)시킴.
제 2차 나선정벌(第 2次 羅禪征伐)

 

1658년, 정성공(鄭成功)이 대군(大軍)을 일으켜 남경(南京)을 공격(攻擊)함.

 

1659년, 효종이 사망하자 아버지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가
효종의 상(喪)에 어떤 복을 입을 것인가를 두고
서인과 남인 간에 논쟁이 발생하나 서인의 기년설이 채택됨.
기해예송(己亥禮訟)

 

1659년, 남명의 영력제가 윈난성으로 도망치자 오삼계가 추격하여 윈난성을 점령함.

 

1661년, 청(淸) 순치제(順治帝) 사망. 강희제(康熙帝) 즉위.

 

1662년, 정성공이 900척의 함선과 2만5천의 대군을 거느리고 대만으로 출병하여,
네덜란드인들이 세운 제란디아 요새를 공략하여 항복을 받아내고 대만을 반청기지로 만듬.

 

1662년, 정성공(鄭成功)이 대만에서 39세의 나이로 사망함.

 

1669년, 훗카이도에서 샤쿠샤인 전쟁 발발.
샤쿠샤인 봉기(シャクシャイン 蜂起)

 

1671년, 조선 8도 전국에서 크고 작은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조선 인구의 5분의 1인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발생함.
경신 대기근(庚辛 大飢饉)

 

1673년, 강희제가 철번(번왕의 철폐)에 관한 조서를 하달하자,
오삼계가 스스로 천하도초토병마 대원수라고 자칭하고 반란을 일으킴.
삼번의 난(三藩之 亂)

 

1674년, 오삼계가 호남,강서를 점령하고 군을 동서로 나누어,
서쪽은 사천성, 섬서성에 동쪽은 광서, 복건까지 세력이 다다르자
복건의 경정충도 오삼계군에 호응하여 반란을 일으킴.
삼번의 난(三藩之 亂)

 

1674년,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가 사망하자 자의대비가,
어떤 복을 입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다시 대두 되어,
서인과 남인간에 논쟁이 발생하여 남인의 기년설이 채택됨.
갑인예송(甲寅禮訟)

 

1676년, 상가희가 병사하자 맏아들 상지신이 번을 장악하여,
광동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양자강 이남 일대는 반청세력이 지배함.
삼번의 난(三藩之 亂)

 

1676년, 무원(撫遠) 대장군 도해(圖海)가 인솔한 청군(淸軍)이 한중(漢中)에서,
북으로 섬(陝), 감(甘)을 진공해 온 오삼계(吳三桂)의 군사를 격퇴시키고,
평량(平諒-감숙(甘肅)에 속함)에서 왕보신(王輔臣)을 포위하는데 성공하자,
왕보신(王輔臣)은 하는 수 없이 투항을 하였고 서북전역을 청군이 수복함.

 

1677년, 정원(定遠) 평구(平寇) 대장군 악락(岳樂)과 양위(揚威) 대장군 라포(喇布)의,
군사는 강서(江西)로 출동하여 평향(萍鄕), 길안(吉安) 등 요지를 수복하고,
대장군 걸서(杰書)의 군사는 절강(浙江)의 금화(金華)를 수복하고,
복주(福州)로 진군하여 경정충(耿精忠)을 핍박하여 투항을 받아낸 뒤,
남쪽으로 진군하여 조주(潮州)를 수복하고 상지신(尙之信)의 항복을 받아냄.

 

1678년, 셍게가 세첸칸에 의해 살해되자 갈단이 이들을 토벌한 뒤,
오이라트를 정벌하여 호쇼트부를 복속시키고 준가르 부족장이 되어,
달라이 라마에게 텡겐 보슉트 칸이라는 호칭을 받음.

 

1678년, 오삼계(吳三桂)가 형양(衡陽)에서 제(帝)로 칭하고 국호를 대주(大周)로 선포하나,
곧 우울증으로 죽고 그의 손자 오세번(吳世?)이 계위하여 귀양(貴陽)으로 철퇴하자,
악락(岳樂)의 군사는 호남(湖南) 깊이 들어가 장사(長沙), 원주(沅州)를 점령하고,
라포(喇布)의 군사도 형주(衡州)를 수복(收復)하는데 성공(成功)함.

 

1680년, 예송(禮訟)에서의 승리로 정권을 장악한 남인세력에게 싫증을 느끼던,
숙종이 용봉차일 사건을 계기로 조정(朝廷)의 요직을 모두 남인에서 서인으로 바꿈.
경신환국(庚申換局)

 

1681년, 전굉렬(傳宏烈) 등의 부대는 광동(廣東) 청군(淸軍)의 지원을 받아 계림(桂林)을 수복했고,
섬(陝)와 감(甘)의 청군(淸軍)은 각각 남하하여 한중(漢中), 중경(重慶), 성도(成都)를 수복하는데 성공하고,
운남(云南)으로 진군하여 곤명(昆明)으로 도망가는 오세번(吳世?)을 추격하여,
곤명(昆明)을 함락시키자 패전한 오세번(吳世?)은 자살했으며 나머지 6700여명의 장병은 투항했다.

 

1683년, 청나라 수사 제독 시랑(施琅)이 함대를 인솔하여 대만으로 출항하여,
팽호 인근에서 정군과 대격전을 벌여 전함 150여척을 대파시키고 1만 2,000여명을 사살하자,
정극상이 사태의 불리함을 알고 청(淸)에게 항복함으로써 청군이 대만을 수복하는데 성공함.

 

1686년, 청(淸)의 명장(名將) 악종기(岳鍾琪) 탄생(誕生).

 

1688년, 서쪽을 석권한 갈단 보쇽투 칸이 외몽골로 침공함.

 

1689년, 러시아가 헤이룽 강(黑龍江) 방면으로 진출해오자 청군은,
그 저지에 나서 러시아인이 구축한 알바진 성(雅克薩 城)을 포위·공격한 것을,
계기로 조약이 맺어지고 청은 헤이룽 강 북안을 확보하는데 성공함.
네르친스크 조약(尼布楚條約)

 

1689년, 숙종이 윤을 원자(元子)로 책봉하고 장씨를 희빈(禧嬪)으로 삼으려 하자,
집권세력이던 서인이 반대하나 숙종은 남인들의 주장을 지지하여,
서인세력들은 파직,유배하여 조정에서 물러나고,
남인세력이 득세하여 민비는 폐출되고 희빈은 정비가 됨.
기사환국(己巳換局)

 

1690년, 갈단은 먼저 막서를 점령한 후 동쪽에 있는 막북으로 진격하자,
막북은 막남으로 도망쳐 청나라 조정에 보호를 요청하엿고,
강희제는 사신을 갈단에게 보내어 군사를 물리라고 명햇으나,
러시아를 등에 업은 갈단은 군사를 물리기는커녕 오히려 막남으로 진격하엿다.

 

1690년, 강희제는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북경을 출발하엿는데,
좌로군은 갈단과의 첫 싸움에서 참패를 당했으나 곧 태세를 정비하여 반격하엿고,
이와 동시에 산을 에돌아 적의 배후로 들어갔던 청나라군도 공격을 감행하엿고,
이렇게 앞뒤로 협공을 받은 갈단의 군대는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막북으로 달아났다.

 

1694년, 숙종은 장씨에게 싫증을 느끼고 민씨를 폐한 일을 후회하게 되었고,
이런 정황으로 마침내 숙종은 김춘택 등의 폐비민씨 복위운동을 옳게 여겨,
민암을 사사(賜死)하고 남인 세력인 권대운(權大運)·김덕원(金德遠)을 유배하였으며,
민씨를 지지했던 소론의 남구만(南九萬)·윤지완(尹趾完) 등을 조정의 요직에 등용하였다.
갑술환국(甲戌換局)

 

1695년, 조선(朝鮮)에서 을병 대기근(乙丙 大飢饉) 발생.

 

1696년, 안용복(安龍福)은 박어둔(朴於屯)과 울릉도에 고기잡이 나갔다가,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독도까지 추격하여 정박시킨 후 조선의 바다에 침범해 들어와,
고기를 잡은 사실을 문책한 다음 울릉우산양도감세관(鬱陵于山兩道監稅官)이라고 자칭하고,
일본 호키주[伯耆州: 島根縣]에 가서 번주(藩主)에게 범경(犯境)의 사실을 항의하여 사과를 받고 돌아옴.

 

1696년, 시나노(信濃)의 마쓰모토번(松本藩) 가스케소동(嘉助騷動) 발생.

 

1696년, 강희제(康熙帝]는 갈단(?爾丹)을 절멸시키기 위해,
군대를 세 갈래로 나누어 진군하엿고 청군은 고비사막을 넘어,
차오모드(昭草多)에서 중가르의 갈단군을 격파하는데 성공함.
차오모드 전투(昭草多 戰鬪)

 

1697년, 강희제가 군사를 이끌고 친정하자 갈단이 겁을 먹고 후퇴하엿으나,
체왕랍탄이 반란을 일으켜 근거지를 잃게 되었고 결국 갈단은 알타이에서 자살하고,
그의 수하들은 청에 항복하게 되면서 청은 외몽골을 복속하는데 성공함.

 

1699년, 해랑적들이 출몰하여 금주위 부근 바닷가 마을을 약탈함.

 

1708년, 조선(朝鮮)에서 대동법(大同法)이 전국적으로 시행됨.

 

1716년, 일본(日本) 교호 개혁(享保 改革) 시행.

 

1720년, 러시아군이 중가르를 침공하자,
갈단첼렝이 2만의 군사를 이끌고 러시아군을 격파함.
쟈이산 전투(??? 戰鬪)

 

1722년, 강희제가 69세의 나이로 창춘원(暢春園)에서 사망함.

 

1724년, 조선(朝鮮) 경종(景宗) 사망, 영조(英祖) 즉위.

 

1727년,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극심한 당쟁의 폐해를 막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탕평책을 강력하게 시행하였으나,
당쟁의 혼란이 거듭되자 영조가 노론을 몰아내고 소론을 대거 기용함.
정미환국(丁未換局)

 

1728년, 소론 강경파와 남인 일부가 경종의 죽음에 영조와 노론이,
관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영조의 탕평책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킴.
이인좌의 난(李麟佐─ 亂)

 

1731년, 부이단이 군대를 이끌고 호브드로 진격하여 요새를 쌓기 시작하자,
중가르군이 소규모 부대로 유인하고 청군은 그들을 추격하엿으나,
호톤노르에서 중가르군에게 포위당하여 괴멸적인 타격을 입음.
호톤노르 전투(???? 戰鬪)

 

1732년, 호톤노르에서 대승을 거둔 갈단첼렝은 할하 몽골족들에게 연합을 제기하나,
그들은 갈단첼렝의 연합제안을 거절하고 에르데니즈에서 중가르군을 대파하자,
갈단첼렝은 침략을 단념하고 중가르와 청은 알타이산을 경계로 하여 화의가 성립됨.
에르데니즈 전투(光顯寺 戰鬪)

 

1732년, 일본(日本)에서 교호 대기근(享保 大飢饉) 발생.

 

1733년, 에도(えど)에서 우치코와시(打ちこわし) 발생.

 

1734년, 청(淸)에서 지정은제(地丁銀制)가 전국적으로 시행됨.

 

1735년, 청(淸) 옹정제(雍正帝) 사망. 건륭제(乾隆帝) 즉위.

 

1738년, 이와키 타이라 번(磐城平藩) 겐분 잇키(元文 一揆) 발생.

 

1739년, 돗토리 번(鳥取藩) 겐분 잇키(元文 一揆) 발생.

 

1740년, 후난성(湖南省)에서 묘족(苗族)들이 반란을 일으킴.

 

1745년, 중가르의 부장 갈단첼렝 사망.

 

1747년, 사천성(四川省)에서 반란(反亂)이 일어남.
대-소금천의 난(金川? 亂)

 

1754년, 청나라의 명장 악종기 사망.

 

1755년, 중가르의 다와치가 학정을 일삼자 지배층과 백성들이 청조에 투항하고,
건륭제가 중가르로 원정군을 파견하여 다와치의 군대를 격파하는데 성공함.

 

1757년, 청의 중가르 통치방식에 불만을 품은 아무르사나가 반란을 일으키나,
청군이 아무르사나를 격파하는데 성공하고 그 후 청군이 중가르인들을 학살함.
중가르(準?爾) 멸망(滅亡)

 

1774년, 산둥에서 백련교도들이 반란을 일으킴.
왕윤의 난(王允─ 亂)

 

1776년, 조선에서 영조가 83살의 나이로 사망함.

 

1781년, 간쑤성(甘肅省)에서 반란(反亂)이 일어남.
회교도의 난(回敎徒─ 亂)

 

1782년, 일본(日本)에서 덴메이 대기근(天明 大飢饉) 발생.

 

1786년, 후 레 왕조가 내부의 불화로 정국이 혼란스러워지자,
완문혜는 북벌을 감행하엿고 그의 군사들은 탕롱에 입성하여,
베트남 북부를 장악하던 찐씨세력을 몰아내고 베트남을 통일함.
서산당의 난(西山黨之 亂)

 

1786년, 대만(臺灣)에서 임상문(林爽文)이 반란(反亂)을 일으킴.
천지회의 난(天地會─ 亂)

 

1787년, 에도(えど),오사카(おおさかし)에서 우치코와시(打ちこわし) 발생.

 

1789년, 소통제가 청군에게 지원을 요청하자 건륭제는 이에 응하여 군사를 파견하엿는데,
완문혜의 군대가 밤중에 청군을 기습하기 시작하자 청의 지휘관 손사의가 겁을 집어먹고,
강을 건너 다리를 끊은 뒤 혼자 달아나고 결국 청군은 완군에게 학살당함.
후 레 왕조(後黎朝) 멸망(滅亡), 서산조(西山朝) 건국(建國)

 

1796년, 백련교도들이 청조에 대항하여 후베이에서 시작으로,
허난,산시,쓰촨,간쑤 등 각 성의 산간지대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킴.
백련교도의 난(白蓮敎徒- 亂)

 

1799년, 건륭제가 89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청나라의 강건성세가 막을내림. 

 



16세기 왜구들의 동아시아 약탈


원나라의 판도


명나라의 판도


청나라의 판도

 

잇키 : 일체화된 연대정신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과 그 집단의 무장봉기.

 

우치코와시 : 에도 시대 흉년에 빈민이 부잣집,관청을 때려부수고 약탈하던 폭동.

 

강건성세 :  청나라의 최전성기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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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키  (0) 2015.06.26